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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아티스트(Brain Artist) 김영화

아름다운 영혼의 색채는 사랑이다

이효주 기자(topgolf@daum.net) | 기사입력 2021/06/05 [17:31]

브레인 아티스트(Brain Artist) 김영화

아름다운 영혼의 색채는 사랑이다

이효주 기자 | 입력 : 2021/06/05 [17:31]

 

HUMAN STORY

동, 서양의 여러 화가들이 영화와 같은 삶을 살았다. 대표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를 들 수 있는 데 고흐의 삶은 영화로 여러 번 제작됐고 돈맥클린 Don McLean의 노래 '빈센트 (Vincent)'로 만들어져 불리기도 했다.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공교롭게 이름까지 “영화“인 김영화 화백의 삶 또한 영화와 같다. 예술가의 집안에서 너무나 많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김 화백은 골프전문화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현재 '브레인 아티스트 (Brain Artist)로, 팔색조 같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좌절과 성공, 사랑과 도전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

김 화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57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개최, 국전 특선 및 공모전 우수상 수상, 2009년 스포츠서울 이노베이션 기업& 브랜드대상-문화, 예술부문 대상과 2015년 아시아중앙위원회 예술대 사로 활동했고 매일경제, 충청일보, 문화일보에 13년째 그림을 연재 중이며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 (사)한 국디지털문화진흥회 직속 기관인 한국뇌융합예술원 원장이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6월, 김 화백의 영화 같은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씬1 작가의 작업실

김 화백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위, 아래로 오렌지색 슈트에 모자까지 보통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의상이 아니었다. 김 화백은 멋진 슈트를 입고 기자를 위해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했다. 커피콩을 직접 갈아 종이 필터에 담고 더운물을 돌려 붓는 동작이 능숙하다.

“저쪽에 커피머신도 있지만 핸드드립을 좋아해요. 이 향 좀 맡아보세요. 정말 좋죠? 이렇게 거품이 올라오는 걸 보는 게 참 좋아요. 커피 한잔을 마셔도 향기와 같이 마시니까 얼마나 여유롭고 좋은지요?

저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렇게 갓 내린 핸드드립 커피처럼 향기로운 만남이 좋아요.” 한동안 드립 커피도 못 만들어 마실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최근 여유가 조금 생겨서 드립 커피를 자주 만들어 마신다고 한다. 커피를 마셔보니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게 물과 온도가 딱 맞았다. 원두가 살짝 발효된 것이라서 풍미가 좋고 단맛의 여운이 길었다.

“이 잔은 다 드시고 가지고 가세요. 작은 선물이예요. 이 잔은 한국 봉화연옥( Nephrite)을 섞어 만들어서 건강에도 도움이 돼요.” 그러면서 작품에도 연옥을 사용한다고 했다. 김 화백은 넓은 작업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 붉은 바탕의 둥근 캔버스를 가리켰다. 연옥을 섞은 재료로 용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 그림은 특히 중국에서 인기가 있다고 한다. 김 화백은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동남아시아에서도 유명 작가로 대접받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의 보르네오CC에는 100여 점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한류 열풍에서 유독 우리 그림이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 화백은 보란 듯이 그림의 한류를 개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집에 가면 차실처럼 넓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 있어요.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4미터나 되는 차탁에서 차를 마셨어요. 오시는 분들은 차탁에 한 번, 아버지가 끓인 차 맛에 한 번, 두 번 반하셨죠. 차를 마시는 것을 다도라고 하잖아요? 아버지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손님들께 차를 대접했는데 어린 제가 보기에도 최고로 정성이 가득한 손님 대접이었어요.” 핸드드립 커피가 고향집 차실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족과 김 화백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넘어갔다.

 

▲ 만사여의 120x120cm 水干粉彩 · naphrite 2021     ©

 

#씬2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게 각인된 어린 시절

"우리 집안은 4대째 내려오는 도예가 집안이에요. 2012년 작고하신 아버지 도봉 김윤태(무형문화재 사기장 13호)씨는 가마 제작기술 국내 최고 사기장이셨어요. 조선 후기의 전통적 방식으로 모든 자기 제작 과정을 이수해 도자기 분야의 기술을 보유하신 거죠.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국보가 된 '이도다완' 등 현재 문헌으로 남아 있는 다완 30여 종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셨어요. 지금 4대의 맥은 남동생 효봉 김영길(무형문화재 13호)씨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 옆에서 그릇과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어요. 종이보다 먼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 거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기억이 아련해요. 종이는 평면이지만 도자기는 빛깔과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살아있는 생물 같은 느낌을 줘요. 저는 도자기 하나하 나에 수를 놓듯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그려 넣었어요."

그래서일까? 김 화백은 지금도 도자기 작업을 한다. 김 화백의 작업 실에는 가마가 있고 작업 테이블 위에는 가마에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들이 놓여있는 데 그 형태가 기발하다. 바로 골프 드라이버 헤드 모양에 그녀가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것으로 골프대회 우승자에게 수여 하게 될 도자기 트로피다. 그는 골프대회 우승 트로피를 도자기로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김영주골프 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유소연 선수에게 수여된 도자기 트로피도 김 화백의 작품이다.

"골프 우승 트로피는 다 비슷하잖아요? 골프의 꽃인 우승 트로피를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만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해 만들 었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 되었어요. KLPGA 이데일리 트로피를 만들었는데 선수들이 너무나 좋아해서 저도 무척 기뻤어요."

한편, 김 화백은 어린 시절이 마냥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상실과 결핍의 시간 또한 있었다고 회상한다. 바로 부친이 사기를 당해 가세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극심한 경제적인 타격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으셨죠. 그래서 그녀는 중학교 1년을 학교에 가는 대신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쑥을 뜯어서 시장에 내다 팔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서 세상을 어린이의 눈이 아니라 어른의 눈으로 보게 됐고 공부도 생활도 내 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했어요.” 이러한 경험들은 김 화백이 지금 나눔의 삶을 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김 화백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나눔의 전시회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종로갤러리에서 아름다운 나눔의 전시를 개최해 수익금 전액으로 어린이 전동 휠체어 5대를 사서 정립회관에 기증했고, 2013년에는 일본 지바현 지진 돕기를 위한 전시회를 일본에서 개최해 수익 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2016년에는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그후원금을 국제예술진흥원에 전달해 소아 난치병 환우 돕기에 사용했다.

“혼자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는 어렵지만 서로 힘을 합친다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좋은 일을 하면 두배로 더 즐겁고 보람을 느껴요.” 

 

▲ 축제3 61x61cm 水干紛彩 2021     ©

 

#씬3 무채색, 인생의 침체기 혹은 위기

김 화백은 중학교 사춘기 소녀가 쑥을 뜯기 위해 산과 들을 다니면서 계절의 색깔과 변화를 느끼고 자연과 교감했던 기억들이 화가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고 회상한다. 그렇지만 김 화백이 30대 후반의 나이였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는 사실 결혼을 하기 보다는 유학 가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저의 예술 세계를 넓히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됐고, 저의 현실은 미술학원 원장이었어요.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1년에 한, 두 점 정도로 그룹 전에 내기 위한 게 전부였죠. 제 세계가 너무나 좁아지는 것 같아서 정말 우울했어요.” “어릴 때 어려운 환경에서 짓눌려 응어리진 마음이 제 안에 가득 차 있었더라고요. 너무나 무거운 삶을 짊어지고 있었어요. 35년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어요. 내 안에 나만의 세계가 있고, 내가 최고라는 아집만 있던 시기였지요.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마음은 제가 컵에 커피를 채웠듯이 가득 차 있으면 다른 것이 들어올 여유가 없기 때문에 비워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어요. 특히 마음속에 나쁜 기억과 감정들이 가득 차 있을 때는 그것을 비워내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것이 들어올 수 없어요. 쓰레기통에는 쓰레기만 들어오죠. 그런데 쓰레기를 모두 버리고 비운 다음에 아름다운 꽃을 꼽기 시작하면 더 이상 쓰레기 통이 아니고 꽃병이 되는 거예요.”

김 화백은 마음을 비워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 비워 내기도 힘들었다고.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었고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스스로 바늘구멍을 내고 덜어내기를 계속했다.

 

“정말 밑바닥까지 비우다 보니까 비워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하니까 변화가 찾아왔어요. 얼굴도 밝아지고 사람을 편히 대하게 되고 주변을 돌아보고 관계 설정을 다시 하게 되었고 문제가 나로부터 시작된 거니까 내가 비워서 빈 그릇을 만드니까 다른 것들이 쉽게 채워지는 게 느껴졌어요.” 김 화백은 그때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화가로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제 마음의 밑바닥까지 다 비웠다고 생각했을 때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어요. 컬러가 저에게 온 거예요. 마치 우주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것처럼 화려하고 빛나는 컬러들이 저에게 보였어요. 눈을 감고 있는데 정말 신기하고 오묘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컬러가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눈을 뜨면 그 컬러가 사라지는 것 같은데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면그 컬러가 나왔죠.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어서는 나올 수 없는 영롱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 走蘚120x120 水干粉彩 · naphrite 2020     ©

 

#씬4 생명의 색, 사랑의 색으로 다시 태어나다

“지금은 매일매일 그림을 그려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운 자리에 사랑을 채우는 거예요. 몸과 마음과 육체와 영혼까지 하나가 되는 그런 사랑을 찾으면 답은 거기에 다 있어요. 현대인들은 대부분 고여 있는 사랑을 해요. 교감과 소통을 충분히 해서 흐르는 사랑, 마음과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랑을 만나는 게 창작세계에서는 최고의 레시피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생명의 색, 사랑의 색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저에게 색은 영혼의 울림이에요. 화가는 세상에 없는 자신만의 컬러를 창조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화가가 생각하는 영혼의 색채는 영혼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자연을 볼 때도 세계를 볼 때도 화가만의 눈으로 보고 컬러를 만들어요. 같은 색이라도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요. 물감을 똑같이 쓰는데도 느낌이 다르죠.” 김 화백은 그림을 보여주면서 컬러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같은 색을 써도 화폭에 발현되어 나오는 게 달라서 그림을 그린 지 43년이 됐지만 같은 색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저는 원래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예요. 한국화의 수묵화를 보면 먹색이 단색이지만 먹색에도 농담의 차이는 있어요 하지만 서양의 색에 비하면 단조롭죠. 요즘 색깔이 주는 힘이 엄청 크잖아요? 2021년 올해의 ‘팬텀 컬러 (Pantone color, 미국의 색채 전문 기업인 팬톤 Pantone 회사에서 선정하는 그 해의 컬러)’는 일루미네이팅, 즉 노랑색이에요. 팬텀 컬러는 그해에 전세계적인 유행이나 패션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이렇게 서양의 컬러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또 동양의 컬러에 열광해요. 동양의 색채는 유화 물감이나 아크릴 컬러와 달리 스미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뉴욕에서 전시회를 했을 때 그들은 저의 색에 감탄했고 그림이 팔렸어요.” 김 화백은 마음공부를 하면서 삶의 지혜도 생기고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해 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저는 우리가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너무나 중요하고 영혼이 통하는 아름다운 사랑이야말로 그림의 재료 중 최상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사랑도 한 번 못 해본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그 그림은 감동이나 울림 이 없어요.” 김 화백은 사랑과 존경, 영혼의 울림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 그 덕분에 외국 여행을 하면서 작품 세계를 넓힐 수 있었다.

 

“여행하면서 색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어요. 2013년에 중남미와 스페인 여행을 했는데 동경했던 세계에서 그들의 문화를 접하고 신이 나서 스케치했죠. 재미있는 일도 많았는데 스페인에서 '성가족성당'을 스케치하다가 돌아보니까 일행들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스케치를 계속하고 있었더니 사람들이 찾으러 왔어요. 나중에는 저한테 단독으로 가이드를 붙여 주더라고요(웃음). 다른 사람들은 사진 찍기도 바쁜 시간에 스케치하려니까 손이 정말 빨라야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천경자 화백님 그림을 좋아하고 저도 좋아해요. 천경자 화백님 그림은 사랑이거든요. 울림이 있는 사랑이요. 멕시코에 가보니까 천경자님의 그림에서 본 자연과 컬러가 딱 그대로 있더라고요. 쿠바에 갔을 때도 컬러가 정말 강렬했어요. 여행을 하면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데 쿠바에서도 그랬어요. 아침에 가이드 얼굴을 그려서 선물로 주고 시간이 나면 갤러리 구경을 시켜달라고 했었는데 비행기가 7시간 연착된 거예요. 덕분에 동네 전체가 쿠바 그림들로 가득한 곳에 가서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면서 쿠바 그림을 원 없이 봤어요.” 김 화백은 여행에서 돌아와서 중남미 자연과 현지 사람들에게 느낀 아름다운 영혼의 색채롤 그림으로 표현하게 됐다. 그림에 좋은 에너지, 행복한 에너지, 희망을 주는 힐링의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씬5 골프전문작가로 성공하다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에요. 골프는 골을 푸는 운동이에요(웃음). 뇌를 활성화하는 운동이죠. 제가 좋아하는 자연과 좋은 분들과 교감하고 또 골프전문화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으니 저에게는 진짜 좋은 운동이죠.” 김 화백은 우연히 잡지에 골프 그림을 연재하게 됐다. 이후 전 세계의 200여 곳에 이르는 골프장을 다니면서 작품을 하게 됐고 골프 실력도 싱글 수준에 이르렀다.

 

“자연에서 골프를 하면서 더 큰 세계와 만나게 됐어요. 대우주와 자연,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사랑을 느낌으로 알게 됐어요. 그리고 골프장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화폭에 옮겼죠. 골프를 흔히 인생에 비유하죠. 골프장마다 형태가 다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펼치는 희노애락, 즐거움과 희열, 좌절, 성공의 드라마가 있죠. 이 모든 것이 제 그림의 주제예요. 그림을 관찰하면 골프장의 사계절과 설레는 티업의 순간과 홀컵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벙커에 빠지는 아찔한 순간 그리고 승리의 순간은 물론 남녀 군상들이 벌이는 우정과 사랑까지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골프를 주제로 한 김 화백의 작품은 경이롭다. 일단 사이즈가 크고 보는 순간 하늘과 땅을 양분한 색채의 대담성이 느껴져 남성 화가의 작품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여성화가의 섬세함과 따뜻한 감성이 느껴진다. 동양적인 선과 동양의 색, 수간분채을 사용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김 화백은 2004년 최초로 예술의 전당에서 골프그림 전시회를 개최한 이래로 49회 골프관련 작품전시회를 개최했다. 또한 매일경제와 월간조선, 충청일보, 문화일보 등 13년째 그림을 연재하고 있다.

 

 

#씬6 또 한번의 변신, 브레인 아티스트

김 화백은 최근 브레인 아티스트(Brain Artist)로 변신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한국디지털문화진흥회 직속기관인 한국뇌융합예술원의 초대 원장으로 추대되어, 뇌의 활성화와 예술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에는 입체주의, 추상주의가 있었다면 지금은 브레인 아트(Brain Art) 시대로, 그 슬로건은 '뇌가 예술의 본질이다' 또는 우리가 '마음이 아프다' 라고 하는데 실은 뇌가 아픈 것이며. 마음도 다 뇌에서 나오는 거죠. 뇌를 활성화시켜서 예술적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해, 우울하고 불안한 세상을 빛과 행복, 희망으로 힐링되는 계기를 만들고.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좌 뇌는 논리적인 사고에 관한 기능, 즉 언어와 계산 등을 담당하고 우뇌는 그림 그리기, 음악 듣기 같이 사물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창조적인 발상을 하는 기능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좌뇌를 쓰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뇌의 기능은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우뇌에 자극을 줘서 활성화시키면 좌뇌와 우뇌가 융합이 되고 감정과 이성의 조화가 이루어지죠. 우주의 에너지는 오른손으로 들어가서 왼손으로 나오는 데 특히 왼손 중지에서 에너지가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해요. 제가 만든 ‘7분의 기적’ 프로그램을 한번 하면 뇌가 확실히 활성화 돼요. 다른 사람보다 제가 하면 더 잘 뚫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가수 최진희씨와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최진희씨는 김 화백과 뇌를 활성화하는 수업을 한 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현재 함께 공동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

 

“최진희씨와는 작년 7월에 만나게 됐어요. 당시에 최진희씨는 매우 우울해 했어요. 가수가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다 없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그러던 중에 지인분이 최진희씨에게 ‘김영화를 만나면 행복해질 거다'라고 해서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최진희씨가 제 수업을 워낙 잘 받아들여서 다음 수업에 그림을 스무 장 넘게 그려 가지고 오셨죠. 딱 한번의 수업으로도 이미 활성화된 거죠. 그 후로 최진희씨는 그림에 푹 빠졌고 너무너무 행복해하셔요. 여기 벽에 있는 그림이 바로 최진희씨 작품이에요.

그림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여기 제 작업실에서 전시하고 있어요. 어떠세요?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정말 좋죠? 마음에 스며드는 감성적인 최진희씨 노래가 그대로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최진희씨와 저는 충청일보 주관으로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식 콜라보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에요.”

 

김 화백은 현재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그림은 대면 수업을 해야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시대가 됐으니 앱을 통해서 보급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앱이 보급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씬7 Show must go on 인생의 드라마는 계속되어야 한다!

김 화백의 어린 시절 꿈은 실현됐다. 유명화가가 되어 성공했고 아름다운 영혼의 색채로 가득한 삶과 현재 그녀가 꿈에 바라던 아름다운 사랑도 현실이 됐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 화백에게 성공과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었다.

 

“가슴으로 만난 사람은 꽃이에요. 아름다운 색채는 사랑이고요. 성공도 사랑이고요. 사랑이 없었으면 행복도 없어요. 인생에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것은 가슴으로 대화하고 나누는 따뜻한 사랑이에요.” 김영화 화백에게는 성공도 행복도 삶도 예술도, 모든 것은 사랑이다. ‘아름다운 영혼의 색채, 아름다운 사랑’을 주제로 김 화백의 삶과 예술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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