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바이네르(주) 회장 “좋은 신발이 인생을 바꿉니다.”한국의 장인정신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다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예술은 시간을 초월한다. 한 켤레의 구두에 담긴 정성과 혼심은 그렇게 세월을 뛰어넘어 영원한 가치가 된다. 구두를 만드는 일은 단순한 제작이 아닌, 인간의 삶과 직결된 예술이라 믿어온 한 장인이 있다. 43년간 구두에 생명을 불어넣어 온 바이네르 김원길 회장의 철학이다. 장인 정신으로 일군 구두 왕국의 현장을 찾았다.
“구두는 신체의 일부이자 주춧돌입니다. 발의 건강이 무너지면 사람이 무너지죠. 좋은 신발은 이 주춧돌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야 합니다.” 연 매출 500억 원의 컴포트화 브랜드 바이네르를 이끄는 김원길 회장의 말에는 43년 구두 인생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984년 전국기능경진대회 제화 부문 동상 수상자인 그는 한 장의 가죽으로 발 전체를 감싸는 모카신공법을 국내 최초로 구두에 적용했다. 여기에 하이브리드 방식의 캘리포니아 공법까지 도입하며 한국인의 발에 가장 잘 맞는 구두를 연구해왔다.
“신발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입니다. 구두를 만들 때는 마치 조각가가 작품을 다듬듯 정성을 다합니다.” 구두를 대하는 그의 장인정신은 현재 바이네르가 전국 70여 개 매장을 운영하며 한국 수제화 시장을 선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그는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연구실에서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 개발에 몰두한다. 한 켤레의 구두가 완성되기까지 수십 번의 테스트와 수정을 거치며, 완벽한 착화감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좋은 신발 한 켤레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수십 년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다. 바이네르의 모든 제품에는 이런 장인 정신과 고객을 향한 진정성이 깃들어 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직원들에게도 깊이 뿌리내려, 모든 구성원이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농부의 아들, 구두 왕국을 세우다 충남 당진의 가난한 농가에서 자란 김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작은아버지의 제화점에서 구두 일을 시작했다.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상경했을 때는 앞날이 막막했죠. 하지만 ‘최고가 되자’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 열여덟 청년은 여러 제화 공장을 전전하며 기술을 익혔다. 하루 12시간 근무는 기본이었고, 퇴근 후에도 남아 기술을 갈고닦았다. 당시 그는 남들이 쉴 때도 쉬지 않았다. 주말에도 작업장에 나와 혼자 연습했고, 선배들의 기술을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온갖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장님 몰래 가죽 자투리를 모아 연습했어요. 실패작도 수없이 많았죠. 하지만 그때의 시행착오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쌓은 실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 29살의 나이에 구두 부속품을 제조 판매하는 ‘원길상사’를 차렸다. 당시 국내 제화 시장은 수입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었고, 국산 브랜드는 기술력과 디자인 면에서 크게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를 기회로 삼았다. 한국인의 발 모양과 보행 습관을 연구하며 한국인에게 가장 적합한 구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밀라노에서의 만난 인생 터닝포인트 1994년, 김 회장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전환점이 찾아왔다. 밀라노 구두 박람회에서 만난 이탈리아 브랜드 ‘바이네르’였다. “유럽에서는 이미 ‘편한 구두’가 대세였어요.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건강한 구두를 만드는 바이네르의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죠.” 특히 바이 네르의 편안함과 세련된 디자인의 조화는 그가 추구하던 이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오랜 준비 끝에 1996년 바이네르의 한국 라이선스를 획득했고, 15 년간의 성공적인 운영을 바탕으로 2011년에는 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탈리아 바이네르 브랜드를 통째로 인수한 것이다. “로열티를 주던 회사에서 받는 회사가 됐습니다. 한국 제화 산업의새 역사를 쓴다는 자부심이 컸죠.” 한국 기업이 유럽의 전통 있는 구두 브랜드를 인수한 것은 바이네르가 처음이었다. 이는 한국 제화 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경영 철학 바이네르 사무실에는 특별한 금기어가 있다. 바로 ‘불황’이라는 단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경기’란 말은 금지예요.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모든 책임을 불황 탓으로 돌리는 건 기업가의 자세가 아니죠.” 이런 철학으로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까지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왔다.
김 회장의 고객 중심 경영은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여의도 한강에서 고객들과 요트를 타거나, 농촌에서 과일 따기 체험을 함께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이 아닌, 고객의 생생한 목소리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소중한 기회다. “고객님들과 직접 대화하다 보면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귀중한 인사이트를 얻습 니다. 신발에 대한 작은 불만부터 새로운 니즈까지, 모든 이야기가 제품 혁신의 씨앗이 되죠.” 코로나19로 매출에 부침을 겪었을 때도 김 회장의 원칙은 변함없었다. 품질과 서비스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고객의 신뢰를 더 굳건히 해야 하죠.” 오히려 이 시기에 온라인 판매 채널을 강화하고, 발 측정 키오스크를 도입하는등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했다.
나눔과 혁신으로 그리는 미래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합니다. 가치 있게 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기업인이죠.” 이런 철학을 실천하듯 바이네르는 매년 10억 원 이상을 사회공헌에 투자한다. 지역 노인정에서 진행하는 효도잔치부터 청년 창업 지원까지, 나눔의 영역도 꾸준히 넓히고 있다. 특히 2023년 튀르키예 지진 당시에는 30억 원 상당의 신발 1만 켤레를 기부하며 글로벌 기업 시민으로서의 책임도 다하고 있다. 직원 복지도 파격적이다. 15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는 대리점 독립 기회를 제공하고, 셋째 아이를 낳으면 2000만 원을 지원한다. “직원이 행복해야 좋은 제품이 나옵니다. 복지는 비용이 아닌 투자죠.” 이러한 상생 경영 덕분에 바이네르의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오랜 경력의 장인들이 젊은 세대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멘토링 시스템도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 바이네르는 디지털 혁신에도 적극적이다. 업무 관리 시스템은 이미 수년 전부터 디지털 전환을 끝냈고 맞춤형 인솔 제작 시스템 도입, 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해 가고 있다. “전통과 첨단 기술의 조화가 미래 경쟁력입니다. 장인정신을 지키 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나가야 해요.” 구두를 넘어 골프화, 핸드백, 벨트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토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약하는 것도 이런 혁신의 연장선이다.
바이네르의 DNA를 세계 곳곳에 심기 위한 도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을 자처하는 김 회장의 눈빛에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향한 열정이 빛난다. 구두 한 켤레에 담긴 장인정신으로 시작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그의 이야기는, 꿈과 열정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인생은 백지수표와 같아서 꿈의 크기만큼 가치가 정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천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얻죠.”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으로 한국 구두 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김원길 회장. 그의 구두에는 장인정신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비전이 담겨있다. 자녀들도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있다. 프로골퍼로 성장한 아들에게도 그가 바라는 것 또한 그의 삶의 궤적과 닮아있다. “존경받는 골퍼,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바이네르도 이제 세계 시장을 향해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장인정신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저의 마지막 꿈입니다. 그 꿈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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