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답게, 여수를 여수답게 차세대 한국 정치의 리더 조계원(趙啓垣) 국회의원
좋은 책 한 권이 인류 역사에 빛을 남기고 세상을 변혁하기도 한다. 어느날 에디슨은 자신의 평생을 통해 가장 유익한 책 『패러데이 전기 시리즈』를 읽고 전기에 관한 모든 내용을 숙지했다. 책 한 권의 놀라운 힘. 엄마 낸시 덕분에 이 책에 푹 빠진 에디슨은 도서관을 통째로 읽었고, 결국 발명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책을 읽어볼 시간이 없다면 책을 만져보기라도 하라(If you don't have time to read a book, at least touch it.)며 『윈스톤 처칠』은 강조했다. 책이 한 사람은 물론 국가의 명운(命運)까지도 바꾼다는데 100% 동의하며, 조계원 의원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역저(力著) 『조계원의 여수 생각 : 사람을 사람답게, 여수를 여수답게』와 『민심의 교차로, 쌍봉사거리로 출근합니다』 2권을 숙독하였다. 한마디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이 책들의 생각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하라고 한다면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Kites rise highest against the wind, not with it.)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허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가히 고난과 역경을 딛고 우뚝 굴기(崛起)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탑골프는 2025년 격동의 을사년 새해 특집으로 『국회의원 조계원』을 주목하고자 한다. 자~ 지금부터 왜 그가 첫 번째 인물로 간택(揀擇)될 수 밖에 없었는지 하나하나 파헤쳐 보자.
조계원의 여수 생각 : 사람을 사람답게, 여수를 여수답게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저서명이자 슬로건이기도 한 ‘사람을 사람답게, 여수를 여수답게’에 대한 개요와 가장 기억에 남는 꼭지는 무엇인지 물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인간 조계원부터 정치인 조계원까지 담아 내려고 했습니다. 인간 조계원이 왜 정치를 시작하게 됐고,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를 무척 고민하며 썼습니다(웃음). 특히 마지막 피날레는 여수를 위한 정책들을 제안했는데 그만큼 여수 발전에 대한 고민과 애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청 정책수석으로 일하며 『기본사회 박람회』 총괄을 맡았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박람회 개최의 A부터 Z까지 책임져야 했었는데, 주어진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어요. 장소 대관부터 난관이었는데 당시 이재명 지사께서 과감히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주저하며 소극적 자세로 임하던 공무원들은 박람회 개최가 점차 가시화되자 혼신의 역량을 발휘해 줬습니다. 박람회 성공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공무원들이 예외없이 승진하자 이후 경기도에는 일 잘하고 성과를 내는 사람은 반드시 승진한다는 불문율(不文律)이 자리잡혔습니다. 놀랍게도 일이 많고 힘든 소위 『3D 부서』를 꺼리지 않고 오히려 선호하는 『긍정의 조직문화』가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습니다(웃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추천사에서 “이 책에는 조 의원의 삶의 여정이 켜켜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소년 조계원과 청년 조계원, 그리고 사람 조계원을 마주하고 나니 어렴풋했던 그의 면면이 더욱 생동감있게 다가온다. 그에게 의리란 무엇인지, 왜 꽃길 대신 자갈 밭을 택하며 내 곁에 섰는지, 때로는 불도저 같던 그의 모습이 어떤 경로에서 비롯되었는지, 그가 그토록 고향 여수에 애착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을 사람답게, 여수를 여수답게’는 어떻게 그의 꿈이 되었는지.”라며 극찬을 하였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명저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하지 않겠나. 인간 조계원이 필생(畢生)을 통해 체득하고 응축한 주옥같은 경험과 지혜를 한껏 담아 세상 밖으로 내놓은 이 책은 우리 사회를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력(國力)과 명운(命運)까지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고 자란 곳, 의향(義鄕) 보성(寶城)과 여수(麗水) 조 의원에게 그의 이름 『조계원(趙啓垣)』의 함의와 저간의 프로 필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라이름 조(趙), 열 계(啓), 울타리 원(垣)으로서 변화를 가로막는 울타리나 벽에 맞서 좌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라고 할까요. 그런지 몰라도 저는 한번 목표를 세우면 우직하게 밀어 붙이는 스타일입니다. 현 정권의 폭정에 맞서 400일 넘게 여수의 쌍봉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계속했는데 그런 뚝심이 저를 오늘의 이 자리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두 발로 뛰는 정치도 중요하지만 입법기관이라면 사회를 진일보시킬 정책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머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정책 수석으로 일했고, 그전에는 국회의원 보좌관, 문국현대표 원내행정 실장 경험 등을 축적해 왔습니다. 국민들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좋은 정책들을 발굴하는 데 역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이름에 담긴 『Secret Code』를 듣고 보니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가히 명불허전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여수~순천과 목포 사이에 있는 보성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충신열사와 민족의 선각자가 많이 배출되는 고향이어서 『의향(義鄕)』으로 불린다. 그는 세 살 때 여수로 이사 오게 되었다. 당시 선친이 여수 교동에 작은 공업소형 농기계 대리점인 『동양기계사』 를 만드셨는데, 지금도 많은 여수 사람들이 기억하신다고. 어머니는 키가 168cm에 달하는 만큼이나 당차고 억척스러운 여장부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조 의원에게 여수(麗水)는 어떤 곳이고, 지역적 특성이나 강점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고려시대에는 유탁 장군,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지키고, 소중한 우리 바다를 지킨 자랑스러운 『구국(救國)의 도시』입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비 모양의 반도로 특이하게 다섯 개의 만을 갖고 있는 관광지로 유명할 뿐 아니라 풍부한 수산물과 365개의 각양각색의 섬이 있습니다. 2026년에는 세계 최초로 『여수세계섬박람회』도 개최할 예정입니다. 여수는 엑스포와 여수 밤바다로 잘 알려진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리고 아시아 최대 석유화학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반면, 여수가 안고 있는 숙원 과제나 취약점도 적지 않다고 얘기한다. “현재 석유화학산업은 글로벌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수요 감소,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대표 기업인 엘지화학과 롯데케미칼, 여천NCC의 공장가동률은 올해 평균 80%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수국가산업단지가 불황을 겪으면서 입주 대기업도 힘들고 연관 협력업체는 물론 하청업체 심지어 골목상권까지 도미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여수 산단 위기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이 절실합니다. 여수의 위기가 더 큰 경제적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고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등 신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계원 의원의 어릴 적 롤 모델은 『이순신 장군』 그의 어릴 적 꿈은 이순신 장군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나라를 구한 지역에서 자란 만큼 충무공에 대한 남다른 존경과 흠모(欽慕)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나무칼을 만들어 동네 아이들과 이순신 장군처럼 지휘하듯 칼싸움 놀이를 한 적도 많고요. 한때 육군사관학교 진학까지 꿈꿨을 정도로 이순신 장군은 저의 어릴적 롤 모델이었죠(웃음).” 그의 좌우명이랄까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이나 마음에 새겨두는 글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문국현 대표가 내세웠던 ‘사람이 희망이다’도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정치철학입니다. 정치를 하는 동안 항상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신조는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추구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대동세상’, 이를 위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권을 담보하고 실현하는 기본사회 구현입니다.”
한편,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거나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지 물었다. “먼저 떠오르는 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님입니다. 김 대통령님은 사실상 정치적으로 본인을 궁지로 내몰고, 고문까지 서슴지 않았던 정적(政敵)들마저 포용하셨습니다. 협치를 통해 국민을 단합시켜 IMF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정립해 주셨습니다. 제가 성대 졸업 후에 컴퓨터에 빠져들었는데, 김 대통령님이 IT에 투자를 안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의 IT 강국이 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는 문화 정책으로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해 주신 분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모든 것을 『국민을 중심』으로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수한 정치인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집념이 대단하신 분이었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사정기관을 권력에 활용하지 않고 독립기관으로 보장해 주었는데, 역으로 정치보복, 특히 정치검찰의 희생양이 되신 게 매우 안타깝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어머니의 트라우마와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 진 평생의 빚 링컨 대통령은 “나의 성공은 오롯이 어머니의 덕(德)”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듯 큰 인물 뒤에는 존경스런 부모님의 가르침이 자리매김하며 고난에 부닥쳐도 ‘신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며 자존감을 불어넣는다. 조 의원의 어머니가 바로 그런 분이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나가 시루떡을 먹거나 팥죽을 먹었던 추억을 떠올리면 늘 마음이 짠합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늘 해주셨던 말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관(官)에 맞서지 말라’였습니다. 어머니의 사촌 오빠 두 분 중 한 분은 여순사건으로 유명(幽明)을 달리하시고 또 한 분은 행방불명 되셨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걸어온 길이 어머님의 해묵은 트라우마를 치유(治癒)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켜주고 싶었 는데 고생만 시킨 아내는 복학하던 해인 1989년 겨울에 후배의 통사정으로 만났어요. 아내와 첫 만남을 긴장 속에 끝내고 보내면서 처음 잡은 손이 키에 비해 너무 작아 깜짝 놀랬어요. 그 순간 이미 제 마음 한켠에는 그녀를 평생 지켜 주고픈 마음이 들불처럼 솟아 올랐지요(웃음). 5년 만인 1993년 발렌타인 데이에 백수인 제가 어엿한 국어선생님과 결혼을 했으니 대박 아닐까요. 저 때문에 롤러코스트 같은 굴곡(屈曲)진 삶을 살게 했으니 너무 미안하고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탑골프 지면을 빌어 험난한 도전의 길을 가는 저를 묵묵히 따라주며 내조해 주는 데 감사드립니다. 이 빚을 이승에서 다 갚을 수 있을런지요(웃음).”
성균관대학교 신방과 5학년이 총학생회장이 되고, 가시밭길을 헤쳐 오다 그는 성대 5학년 때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다. 그 시절을 회고해 달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기자가 되고 싶어서 신문방송학과를 진학하였는데, 제가 졸업한 성균관대 신방과는 알아주는 데모과였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 광주학살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 독재정권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군사독재와 맞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언더서클 동아리에 가입해 거의 대부분의 교내외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2학년이 되면서는 선배로서 열 명이 넘는 후배들을 동아리에 가입시키기도 했고요. 전방입소 거부 투쟁을 하다 강제징집되어 30개월 넘는 군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상의 보안관 감시를 받으며 군 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굴하지 않았고, 복학 후에도 학생운동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대중적인 학생운동에 발맞춰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하고, 그 다음에는 후배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졸업을 1년 더 미루고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승리하여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할 때는 정부의 폭정에 단호하게 맞서면서도 해직 교수 출신이기도 한 장을병 총장님과 의기투합하여 『금잔디 살리기 운동』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회고해 보면, 1992년 대선 때 전대협의 마지막 명동 시위에서 제가 공중전화 박스에 올라 시위를 주도했던 것도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이나 강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덩치도 크고 체육도 곧잘 하다 보니 용장(勇將)이나 맹장(猛將) 스타일로 보는데 추구하는 것은 덕장(德將)입니다. 용장과 덕장은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용장이 덕장이 될 수 있고, 올바른 덕장이 용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덕으로 부하들을 다스렸지만 군기 위반 시에는 엄하게 『일벌백계(一罰百戒)』하였기 때문에 군의 사기도 유지되고 임진왜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민심의 교차로, 쌍봉사거리로 출근합니다 : 시민 바램 안고 드디어 국회로 2023년 12월 18일 여수시민회관서 열린 ‘민심의 교차로, 쌍봉사거리로 출근합니다’ 저서의 출판기념회는 그야말로 대성황(大盛況)이었다. 1300여 명의 구름인파로 여수 정치의 새바람을 확인하며 그가 이듬해 4월 10일 있을 여수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出師表)를 던진 뜻깊은 날이다. 이 책은 그가 악천후 속에서도 장장 400여 일간 1인 시위를 이어 온 여정을 담았다. 이재명 대표와 이해찬 전 총리 등은 이구동성으로 “쌍봉사거리 출퇴근을 하는데 몇 일이나 하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걸 보고 정말 끈기가 대단한 후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한 두권 쓰기도 힘든 데 15번째 저서라니 그의 탐구력에 그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국가를 위해서 큰일을 하게 될 동량(棟樑)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쌍봉사거리는 그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입니다.”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조 후보는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몸이 많이 안 좋아 여러분께 자주 인사를 못 드렸는데 제가 쌍봉사거리에서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게 뒷받침해 준 일등공신이 바로 제 아내입니다”라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얘기하여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국회의원 조계원』으로 환골탈태 : 그것이 알고 싶다 그가 국회의원 당선 후에 첫 일성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였다. “역점을 뒀던 것은 『현장 민원실』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소명 중 하나는 시민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직접 소통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 여수 시민들께서 이 조계원의 현장 민원실 문턱을 가볍게 넘어주시길 바랍니다.” 한편, 그는 국정감사의 스타요 선두주자라고 회자(膾炙)된다. “저는 지역문화 정책의 중요성과 투자 활성화 문제를 짚었습니다. 현정부의 학교문화예술교육 관련 예산 축소나 수도권 중심의 편중 지원 문제 등 사각지대를 짚기 위해 진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체육특위위원장으로 체육계 비리에 대해서도 국감 때 지적했습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클린스만·홍명보 감독의 불공정한 선임과 정에 대한 책임과 대한배드민턴협회 안세영 선수가 제기했던 문제점들을 확인하고 협회장의 해임을 요구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 문화 예술 균형 발전과 체육계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뛰겠습니다. 또한 『2026년 여수세계섬박람회』의 성공적인 유치를 위해서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할 것입니다. 또한, 국감 때 ‘기후위기 대응댐’ 후보지의 수몰 예상지역에 다량의 문화재가 있음에도 수수 방관했던 『국가유산청』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사라질 뻔한 문화재들을 지켜낸 것입니다. 이후 국가유산청이 개발계획 또는 건설공사로 인해 역사 문화환경 등이 훼손되거나 영향이 있는지 미리 조사·예측·진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여순 특별법 개정안을 22대 국회 임기 내에 통과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사각지대 없는 법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조 의원은 초선의원으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이다. “2026년 세계 최초로 여수에서 『세계섬박람회』를 개최합니다.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들을 문체위에서 고민하고 뒷받침하려고 합니다. 한편, 지역별 문화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고 여수 역시 문화 소외지역입니다. 지역민들이 평등하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2025년에는 더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낭보가 전해졌을 때 문체위 상임위 개최 중이었는데, 의원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한다. 한강 작가의 첫 소설이 ‘여수의 사랑’인데 그가 여수에 살면서 집필한 책인 만큼 여수 시민들도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이번 내란을 막는데 크게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80년 5월이 없었다면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됩니다.”
국회의사당 담장을 넘을 때의 착잡함, 아~ 다시 돌아올 수는 있을까 그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뜻밖에도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다. “저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최근의 느닷없는 계엄으로 충격과 공포에 떠셨을 것 같습니다. 계엄이 터지자마자 국회 담을 넘을 때는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80년 5월 계엄의 충격과 공포로 두려우셨을 텐데 온몸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막아서는 국민들을 보며 울컥했습니다. K-민주주의의 창의적인 힘과 역동성 그리고 코리아 리스크를 빠른 시간에 없애는데 힘이 되신 여러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많은 국민들께서 수십 년 전 들었던 헬기 소리와 전투화 소리에 잠 못 드시던 공포가 다시금 되살아 나셨을 것 같습니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의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로 엄청난 국민들이 희생되어 나라 전체가 비상시국에 처해있습니다. 호남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희생하신 유가족 여러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를 드립니다. 하루 빨리 정상궤도로 진입하도록 저도 사후 수습과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예전에 경기도 정책수석 위치에 있었다. 어떤 역할을 하였고 정책수석 시절 머릿속에서 추진한 정책들은 무엇이 있는지, 어려워진 여수의 해결사로서 기여할 게임 체인저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재명 당시 도지사는 대한민국 1호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는 청년 배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복지 수혜자인 청년뿐만 아니라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의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의 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저는 경기도 최초로 2019년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실무를 총괄했고, 2020년 기본소득 박람회 실무 추진단장으로 기본소득의 세계화, 대중화를 위해 힘썼습니다. 이제는 여수의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는 만큼 지역 경제도 살리고 청년도 지원해 주는 지역화폐를 기반으로 한 여수형 기본소득, 기본사회 정책의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인구 소멸은 여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게 사실입니다. 여수만의 강점을 살려 신산업 전환을 통해 젊은 인력을 유치하고, 정주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여수의 율촌 지역을 복합 신도시로 개발해 젊은 전문인력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우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여수에서 살고 활동할 수 있도록 젊은 문화 예술가 등 스타트업들이 주거 비용을 걱정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방안부터 대학과 산단 연계로 고용 활성화하는 방안까지 총체적으로 놓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리한 경기도가 아닌 험지(險地) 여수를 지역구로 택했다. “여수 시민들은 여수의 발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정치인을 뽑고 싶어 하고, 정치적으로 깨어있습니다. 그런 여수에서 타지에서의 경험과 성공 사례를 여수에 융합해 시너지를 만들어 내고 싶었습니다. 여수 시민들과 공감하기 위해 400일이 넘게 하루 네 시간씩 1인 시위를 했습니다. 한파가 오건 폭염이 오던 피켓을 들었습니다. 조계원의 뚝심과 끈기를 결국 여수 시민들께서 알아봐 주셨고 저를 선택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다소 급한 성격이 늘 단점으로 지적되는데, 동시에 이는 빠른 판단력, 실행력과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고 자부한다. 비상계엄이 터진 날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국회 출입을 가로막는 경찰들을 밀어젖히고 담벼락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강점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국회의원 조계원의 버킷 리스트, 『여수를 여수답게』 조계원 의원에게 이른바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냐고 화두를 던졌더니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답이 나온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치로 모두 함께 잘사는 대동세상을 만드는 것이 저의 정치적 소명이자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저의 미래 버킷리스트입니다. 정치라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저 잘 먹고,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함께 어우러진 공동체의 행복한 삶을 추진해 나가는 정치로 시민들께 보답하겠습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아내와 손잡고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는 삶을 꿈꿉니다.” 그는 특히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여 더 들어보았다. “여순사건은 근현대사에서 발생한 가장 비극적인 일입니다. 친일 세력과 이념 대결에 편승한 이승만 정권이 같은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건입니다. 공식적인 희생자만 만천여 명이 넘습니다. 이미 제정된 여순사건 특별법은 희생자의 가족관계 규정이 미비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과 고통을 치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에 희생자와 가족관계를 확정하고, 희생자와 그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22대 국회에서 꼭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내 삶에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치가 나와 떨어진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일상에 스며들어가 효능감을 낼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22대 임기가 끝날 때쯤 여수시민들에게 어떤 국회의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은지 물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400km이지만 KTX는 2시간 10분대에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여수는 360km인데도 3시간이나 걸립니다. 저는 국토균형 발전, 동서균형 발전을 위해 여수~서울 간 전용 고속철도로 2시간대 교통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문현답을 기대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과 대응책은 무엇인지 소견을 물었다. “트럼프 당선인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조기 종식 입장은 긍정적입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이 종결되길 기대합니다.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대국(大國)다운 포용력을 보이길 바랍니다. 지구적 위기인 기후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멋진 정치도 기대합니다. 또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이 평화와 번영의 길로 함께 갈 수 있는 평화의 정치, 평화 외교를 펼쳐줬으면 좋겠습니다. 신냉전의 진영 대결 외교를 지양하고 세계 평화를 선도하길 바랍니다. 한편, 1905년은 을사오적(乙巳五 賊)이 나라를 팔아먹는 비운을 겪은 격랑의 한 해였습니다. 2025년 을사년은 나라의 정기를 되살리고, 일찍이 김구 선생이 꿈꿨던 『위대한 문화대국』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딛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새해에는 내란의 잔불을 진화하고, K-민주주의로 새로운 역사적 이정표를 만들고, 세계의 민주주 의와 평화를 선도하는 당당한 문화대국으로 발돋움합시다. 탑골프 독자 여러분들 새해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 약무조계원 시무국가(若無趙啓垣 是無國家) 국가군저개고호남(國家軍儲皆靠湖南),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 湖南是無國家).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 『이순신 장군』은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서신에서 ‘국가 군량을 호남에 의지하였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고 하였다. 더욱이 『절상 호남국가지보장(竊想湖南國家之保障)』이라고 썼는데, ‘가만히 살펴보건대 호남은 국가의 울타리다.’라는 뜻이라고. 그만큼 전라도는 임진왜란을 이겨낼 마지막 보루요 전략적 요충지였던 것이리라.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교전략가로 평가받는 서희 장군은 송과 거란간 싸움에서 오히려 강동 6주 영토 확장에 성공하였다. 최근 미〮중 G2간 패권전쟁 틈새에서 백척간두(百尺竿 頭)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현대판 서희 장군은 누구며, 과거 조선을 지키는 호국신기(護國神器)가 거북선이었다면, 지금은 무얼까.
한 명이 제대로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이 두려움에 떤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새삼 폐부(肺腑)를 찌른다. 마침 조계원 의원의 어릴적 롤 모델도 이순신 장군이고, 그 분에 대한 남다른 존경과 흠모(欽慕)도 크다고 하니 조계원 의원에게 거는 국민적 여망을 걸어 봄이 어떤가.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적(政敵)들마저 포용한 리더십과 협치를 통해 국민을 단합시켜 국난(國難)을 극복한 통합의 정신이 절실한 때 아닌가. 조계원 의원이 금뱃지를 단 초선의원의 위치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여태껏처럼 쉬운 길보다는 바른 길, 꽃길이 아닌 고난과 형극(荊棘)의 길을 마다하지 않은 큰 정치인의 반열에 오르느냐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 하지만 국민들과 역사는 훗날 냉혹(冷酷)하지만 엄정(嚴正)하게 정치인 조계원을 기억할 것이라고 단언하며 에필로그에 갈음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탑골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계원 국회의원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INTERVIEW & COLUMN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