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하나로 굳건하게 쌓아 올린『위대한 일터』이대식 회장과 김계숙 관장의 『59 갤러리와 아내의 정원』아름다운 예술 정원 『59 갤러리』에서 인생 2막을 얘기하다
식물은 끊임없이 스스로 꽃이나 잎, 가지를 떨어뜨리며 성장한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올 때 나무는 가지에 달린 모든 것을 떨어내고 세찬 바람에 자신을 내맡긴다. 나무가 겨울을 맞을 때 그러하듯, 우리도 살아가면서 스스로 비워내고 덜어내야 이듬해 파릇파릇한 봄의 향연을 맞이할 수 있다. 이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가령 삶은 인생 자체로 있을 때는 그냥 삶이다. 그러나 여기에 어떤 형용사가 붙느냐에 따라 그 삶은 『행복한 삶』이거나 『보람 있는 삶』이 될 수 있다. 삶의 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가 가른다. 그러니까 더 많은 명사를 부리며 살기 위해 처절한 경쟁의 늪에서 허우 적대는 것보다 내가 이미 가진 명사들에 어떤 형용사를 붙일지 고민하는 인생을 그려나가는 게 더 자신감이 차오르며 마음이 넉넉해지고 삶도 떳떳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위의 얘기는 성공한 CEO이자 평생을 기독교 정신에 바탕한 봉사와 나눔의 삶을 일구어온 이대식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18대 회장과 그의 아내 김계숙 관장의 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지난 11월 20일에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마산리 59번길에 『59 갤러리』와 아름다운 정원 개관을 축하하는『일터사역 방문기도회』가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여의도지회 이정익 목사와 회원 주관으로 열리는 뜻깊은 일이 있었다. 바로 그리스도 평화의 햇살이 잔잔히 스며진 아름다운 가정과 신앙, 하느님 나라 대사역의 장엄하고 눈물겨운 기적의 역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탑골프는 이대식 회장과 김계숙 관장이 그들의 인생과 자연 및 예술에 대해 형용사를 어떻게 완성해 나가는지 둘러보기 위해 『59 갤러리』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운 어울림, 『59 갤러리와 아내의 정원』 : 그것이 알고 싶다 갤러리 1층에 첫발을 들어서자 정면에 김계숙 관장의 커다란 『양귀비꽃』 그림이 마치 수문장처럼 우리를 반겨 준다. 아래쪽에 놓인 『줌 59 갤러리 개관전』 도록(圖錄)도 눈길을 이끈다. 59 갤러리 개관을 축하하는 여성미술동인 줌의 축하 글이 써있다. 『김계숙 작가님의 마음과 소망을 담아 이루어 낸 59 갤러리의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넘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이 갤러리에서 예술 문화의 꽃이 활짝 피어나길 기원합니다(2024년 10. 8)』둘러 보니 갤러리가 참아늑하고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자리에 앉자마자 이대식 회장에게 『59 갤러리』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고, 설계 컨셉은 무엇인지 물었다.
“『59 갤러리와 정원』 이름은 관장인 아내가, 기본설계는 제가 했습니다. 마산리 59번길 초입부터가 우리 땅인데, 갤러리는 59번길 11, 주택은 59번길 14입니다. 기본적인 설계부터 공사 감독까지 제가 직접 했어요. 하지만, 포크레인과 불도저 기사가 설계대로 공사하지 않아 중간에 세 번이나 수정을 했습니다(웃음). 설계 기본원칙은 건물 앞은 잔디밭으로, 나무는 최소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심도록 했습니다. 나중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건물을 가리는 문제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한편, 부지 오른쪽이 꽤 높고 왼쪽이 낮았는데, 일부 흙을 옮겨서 밸런스를 맞추었어요. 그래도 한계가 있기에 왼쪽 끝에 완만한 소나무 동산을 만들어 평온한 느낌이 나도록 했습니다. 산밑이라 기울기가 심하여 2단으로 조성하되 위에는 잔디밭, 아래는 야생화꽃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아래 정원 중앙에는 잔디밭으로 큰길을 내고, 7개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동산과 동산 사이는 소로를 내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느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이곳 부지매입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둘러보러 올 때 남다른 감흥을 얻었다고 한다.
“저와 아내가 처음 왔을 때 앞이 좍~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수천 평이나 되는 넓은 땅이라 미래를 내다보고 딸과 아들의 의견도 듣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0년 4월 중순쯤 이쪽으로 들어오는 연두색 숲길이 봄이라서 그런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들도 이구동성으로 ‘아빠, 무조건 사세요~’라고 하길래 힘을 얻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얘기를 들으니 가족 간의 소통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민주적인지 가늠이 된다. 대개는 경제권을 쥔 가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Follow Me~’하면 따라야 하는 게 현실 아닌가. 이대식 회장의 강점인 서번트 리더십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주님의 은혜로 만난 사랑하는 아내 김계숙과의 한 편의 드라마 사모님께 이 『59 갤러리』를 지어 주고자 하는 속 깊은 마음을 내게 된 연유가 궁금하였다. “아내는 지천명(知天命)인 50살이 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제가 보기에 잘 그린다고 생각했어요. 몇 번 인사동에서 개인전과 합동 전시회를 했는데, 갤러리 대관료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고요. 게다가 그곳은 거의 프로들만 전시회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막 시작하는 분들도 부담 없이 전시회를 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의 놀이터라고 할까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과 같이 즐기며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면 어떨지 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어느날 지나가는 말로 ‘여보 ~마산리 우리 땅에 갤러리를 지으면 어떨까?’ 하고 슬쩍 떠봤는데, 아내가 너무 좋아하는 표정이었어요. 그때부터 발심(發心)을 냈다고 할까요(웃음).”
이왕지사 내친김에 김계숙 여사와는 어떻게 만나셨고, 혹시 두 분 사이의 에피소드나 러브 스토리가 있으면 살짝 귀뜸해 달라고 하였다. “아내와의 만남은 바로 교회입니다. 제가 군복무를 마친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당시 저를 반강제로 김계숙이 납치해서 역으로 결혼을 당했다고 농반진반 종종 얘기합니다(웃음). 부여에 계신 저희 아버님께서 어느날 전화를 하셔서는 ‘대식아~, 너 3월 19일 날 결혼한다면서. 맞아?’ 이렇게 갑작스레 물으시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서로 정혼(定婚) 얘기는 안 한 상태였기에 저로서는 참 난감하고 당혹스럽더라고요. 그렇다고 아버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는 없어서 그만 얼떨결에 ‘네~맞아요’하고 적당히 둘러대고는 얼른 전화를 끊었어요.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알아보니 김계숙씨가 아버지께 전화해서 그날 결혼한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린거지요(웃음). 그 이후로 저는 ‘나 이대식은 결혼한 게 아니고, 김계숙에게 결혼을 당했다’며 아내를 놀려먹곤 했어요. 군에서 제대한 지 딱 10일 만이라 제 머리가 미처 자라지 않았길래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일사천리(一瀉千里)로 결혼식을 치른 거였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가 싫지는 않았던가 봅니다 (웃음).” 베이컨은 ‘남편에게 있어 아내란 초년에는 여주인공이고, 중년에는 친구고, 노년에는 유모’라고 했는데, 그 여주인공이 이제 유모가 되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오늘의 이대식 회장을 움직인 인생의 첫 문장 : 대식아, 나는 너를 믿는다. 모든 일은 네 스스로 알아서 하거라 큰 인물이나 존경스런 분들 뒤에는 훌륭한 부모님의 가르침이 자리 매김한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는 말처럼. 고난에 부닥쳐도 ‘신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며 자존감을 불어넣는다. 링컨 대통령은 ‘나의 성공은 오롯이 어머니 덕(德)’이라고 했다. 이 회장의 선친은 그에게 “대식아, 나는 너를 믿는다. 그러니 모든 일은 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이후로 정신이 번쩍 들며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견지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이게 오늘의 이대식 회장을 성공으로 이끈 『인생의 첫 문장』 아닐까.
이어서 김 관장이 평소 어떻게 내조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돌아온다. “아내는 결혼 후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제 말에는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의견이라도 물을라 치면 ‘당신이 결정하면 따를게요~’ 딱 이 한마디만 하더군요. 한번은 제가 삼성전자에서 중소기업 CEO로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의견을 물었죠. 그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중소기업 CEO는 내일이라도 그만두라고 하면 당장 실업자가 될 텐데, 그때는 제가 공무원이니까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할게요. 당신이 마음을 먹었다면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세요’ 이러는 거예요. 전혀 뜻밖의 대답에 저는 엄청 놀랐습니다. 이런 현명하고 결기있는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정말이지 ‘죽기 살기로’ 혼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웃음).”
그러더니 갑자기 갤러리 안에 놓인 검은색 쇼파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간다. “당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13년이나 일한 패션회사 오너께서 20년간이나 애지중지(愛之重之)하시던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업종이 달라 초반에는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으나, 이내 전무후무한 경영성과를 시현하자 저를 부르시더니 ‘이 사장, 자네는 역시 명불허전이로군~’ 하시며 주셨어요. 거기서 10년, 제가 창립한 삼신테크에서 10년, 그 뒤 창고 한 귀퉁이에서 10년을 눌러있었으니까 자그마치 50년간이나 땀과 열정으로 범벅이 되버린 소중한 저의 애장품이자 보물입니다.”
이 회장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김 관장의 면모(面貌)를 듣다 보니 막 대추차를 끓여 내오는 전형적인 현모양처형(賢母良妻型) 모습과는 180도 딴판이라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찌 보면 저돌적이라고 할까, 요즘 말로 하면 돌직구적인 성격도 겸비하고 있는 거 아닐까. 외유내강(外柔內剛)이나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말이 맞을 것도 같다. 자~김계숙 관장의 작품세계로 한번 들어가 보자.
『작품Ⅰ 양귀비(楊貴妃)』 : 아쉬움을 승화하며, 더욱 붉게 타오르는 김계숙 작가 회심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이대식 회장에게 먼저 김 관장의 그림 세계에 대해 물었다. “아내는 2009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여성미술동인 『줌 (Zoom)』에서 수원 장안구에 화실을 임대하여 지도교수 한 분을 모시고 15명이 매주 수요일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홍대 평생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여름과 겨울방학이란 게 있었는데, 줌 (Zoom)은 아예 스파르타식으로 강행군을 하더군요. 아내가 힘은 들겠지만 그림 실력은 제 눈에 봐도 『일취월장(日就月將)』이라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웃음).” 양귀비 작품이 한눈에 봐도 수작(秀作)이라는 느낌이 들어 좀 더 상세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2019년 5월경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 에서 키르기스스탄 수도인 비슈케크까지 택시를 타고 갔어요. 알마 티에서 약 2시간 후 서쪽 구릉 지대에서 끝없이 펼쳐진 『양귀비꽃 들판』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황홀한 장면들이 눈앞에서 장관(壯觀)을 이루는 통에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많은 사진들을 담아올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아내는 그 양귀비밭을 자주 그리다가 최근 2개 송이로 압축해서 그렸는데, 마침 저희가 다니는 수원성 교회에서 아내의 개인 전시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께서 이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이것은 내가 찜했다’고 하셔서 은퇴 직전까지 그 분 사무실에 걸어두었습니다. 그 이후로 양귀비꽃에 깊이 천착(穿鑿)하며 표현한 게 바로 이 작품입니다. 제28회 나혜석 미술대전에 출품하며 『가작(佳作)』까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
아마추어 작가에게 가작이라도 대단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워낙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라 은근히 『대상(大賞)』을 기대했다고 한다. 뭔가 섭섭함이라고 할까 진한 아쉬움이 이대식 회장의 표정에서 살짝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김계숙 관장은 그러거나 말거나 일체 미동(微動)도 하지 않는다. 순간 삼성 이병철 창업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늘 유념하라며 서예를 써서 내려준 『경청(敬聽)과 목계지덕(木鷄之德)』이라는 유시 (諭示)가 떠올랐다. 무서우리만치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목계와 같이 진정한 프로의 모습. 바로 김계숙 관장이 옆에 있었다.
『영국의 대정치가 처칠』의 촌철살인 같은 명언 : 책과 그림을 벗 삼으시오 주위를 둘러보니 서가에 꽂힌 낯선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어떤 책들이기에 이곳에 두었냐고 물었더니『델리』라는 외국화보집을 꺼내 보여주며 얘기를 이어 갔다. “저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장기여행을 할 때는 자주 그 나라의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곳의 책을 구입합니다. 짬을 내서 거기서 책을 펼치고 있으면 아내로부터 뼈아픈 한마디가 귀에 꽂힙니다. 이제 책은 그만 사라고. 그래도 저는 보고 싶은 책은 꼭 사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그래서 저의 집에는 여러 나라 미술관과 박물관 서적들이 꽤 있습니다. 그 당시는 몰랐는데, 이렇게 『59 갤러리』를 오픈하고 보니까 이곳에 저간의 책들을 자연스레 비치하는 기회가 오게 되네요(웃음).”
그러더니 이번에는 생소하지만 우리나라 작가의 책을 빼가지고 왔다. 겉장에 『아내의 정원(Wife’s Garden)』이라고 씌여 있다. 첫장을 펼치자 ‘당신에게 이 꽃다발을 드립니다. 안홍선, 2024년 1월 23일’이라는 친필 사인이 붉은색 크리스마스 로즈꽃 사진과 함께 굵은 글씨로 쓰여 있다. “제가 몇 년 전 KBS의 『인생 정원』이라는 다큐 프로를 본 후 수소문하여 그분에게 전화를 드렸어요. 그러나, 워낙에 바쁜지 받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사연을 직접 편지로 써서 보냈더니 답이 왔어요. 오산에 있는 그분 정원을 찾아가서 이런 저런 노하우도 듣고, 이 책도 선사받을 수 있었습니다(웃음). 이 자리를 빌어 안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대식 회장과 김계숙 관장의 정원 가꾸기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남다를 뿐 아니라 참 대단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아닌가.
정치가이며 문학가이자 화가였던 처칠은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이렇게 말했다. “비록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 전부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만지작거리고,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펴서 눈에 띤 문장부터 읽어 보시오. 자기 손으로 책장에 꽂아 두고, 설령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게 어디에 꽂혀 있는가를 알 수 있도록 정리해 보시오. 심심할 때 책을 읽겠다는 사람과, 마음이 허탈해지지 않기 위해 책을 읽겠다는 사람과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큰 간극(間隙) 이 있어요.”
『작품Ⅱ 크리스마스 로즈』 : 양귀비와 쌍벽을 이루는 역작이자, 아내의 정원을 빛내주는 수줍음의 대명사 김계숙 관장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크리스마스 로즈(Christmas Rose)』라는 작품은 딸과의 속 깊은 에피소드가 있다고 해서 귀가 솔깃해진다. “사실 크리스마스 로즈는 제 딸 유리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 무척 좋아하던 꽃이었어요. 귀국해서 이 꽃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한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영국에서 씨앗을 우송받아 이곳 동산에 심었는데 싹이 나질 않는 것입니 다. 씨가 썩었나. 이곳 토양에 맞지 않나. 고민하는 와중에 기적처럼 6개월 만에 새싹이 나오는 겁니다. 다음 해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더군요. 이후 씨가 자연적으로 떨어지며 널리 번식하였어요. 지금까지 약 200여 뿌리를 분양했으니, 우리 딸 유리가 이 꽃씨를 우리나라에 널리 뿌린 『1등 공신』이라고 할까요(웃음). 이 꽃의 꽃말은 희망과 회복이라고 합니다. 추운 2월에도 얼어있는 땅속에서 피어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원산지에서는 12~2월에 피고, 우리나라에서는 2~4월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푸른 잎으로 혹독한 겨울을 버틴 뒤 꽃을 피우는 강인함을 지닌 꽃이라 아내도 무척 좋아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크리스마스 로즈는 아래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할미꽃처럼 수줍음과 겸손한 꽃이라 저도 애착이 많이 갑니다(웃음).”
마델론이라는 가난한 양치기 소녀가 어느 추운 겨울밤 동방박사들과 심지어 목동들조차 성자 그리스도께 드릴 선물을 가지고 눈 덮인 들판을 지나가고 있었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마구간 밖에 서서 소박한 꽃 한 송이조차 없어 눈물을 흘리자 바라보던 천사가 꽃잎이 연분홍으로 덮인 아름다운 하얀 꽃 한 송이를 눈 속에서 드러나게 하였다. 기쁨에 넘쳐 마델론은 이 크리스마스 로즈 꽃을 아기 예수의 구유에 봉헌(奉獻)했음은 불문가지가 아니겠는가.
이 회장에게 김 관장의 화풍(畫風)이나 특성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일언지하 (一言之下)에 손사래를 친다. 『반 고흐』 등 유명 화가들도 당대에는 평가받지 못하다가 후대에 가서 엄청난 평가를 받았다며. 뒷얘기가 더 울림을 준다. 김계숙 관장의 그림은 이곳 아내의 정원을 소재로 많이 그리는 편이라, 그냥 자연스레 정원을 거닐 듯이 보고 즐기면 금상첨화(錦上添花) 아니겠냐며(웃음).
『정원 가꾸기』에 대한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정원에는 많은 일화가 존재한다. 『버나드 쇼』는 “정원 가꾸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고 얘기했다. 한편, ‘정원 가꾸기에 대한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라는 말도 와닿는다. 이대식 회장은 “우리 가족 모두 토요일과 휴일에는 정원에 모여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손자, 손녀들에게 동산을 조금씩 나눠주며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로 했어요. 유민이 동산, 현민이 동산, 유리 동산! 처음 2~3년간은 경쟁적으로 용돈을 아껴서 꽃씨를 사다 심더라고요. 우리도 매우 흡족했죠. 그러나 지금은 힘들어서 그런지 시들해져서 오롯이 우리 부부의 일거리로 떨어졌습니다(웃음). 저희가 정원을 가꾸다 보니 아~닮고 싶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 어떤 분은 식물이나 꽃들의 이름을 안부르고 ‘얘들아~오늘 참 예쁘구나’하고 복수호칭을 쓴답니다. 얘네들도 시샘과 질투를 하기 때문이지요(웃음). 저희도 하루 빨리 그런 아름답고 속 깊은 정신을 배우기를 다짐해 봅니다. 아내는 가끔 저를 큰 소리로 부릅니다. 그럴때면 저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부리나케 뛰어갑니다. ‘여보, 무슨 일이야?’ 막상 가보면 실소(失笑)를 머금게 됩니다. 꽃씨를 뿌렸는데 새싹이 나온 것을 가지고 그렇게 온 동네가 떠나갈 듯 큰 소리로 부른 거지요. 꽃눈이 나올 때도 자주 그렇습니다(웃음).”
『정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가 헤르만 헤세다. 쉰넷의 헤세는 서른하나의 예술사가 니논 돌빈과 결혼했다. 취리히의 재력가 친구가 몬타뇰라에 있는 자신의 저택 『카사 로사』를 헤세에게 무상으로 빌려주었다. 헤세는 집 앞에 정원을 꾸몄고 꽃과 포도나무를 심었다. 돌빈은 헤세의 진정한 뮤즈(Muse)였다. 헤세의 하루 일과는 크게 글 쓰고 정원 가꾸고, 정원에 나와 그림을 그리는 일 3가지다. 거기서 『유리알 유희』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편, 정원 가꾸기는 인간에게 참을성을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철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길인주처시명당(吉人住處是明堂) : 어진 사람이 사는 땅이 바로 명당 이대식 회장은 한창 공사 중인 어느날 마을 촌로분들 몇 분이 찾아 와서 일순간 긴장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원래 포도밭을 정원으로 바꾼 겁니다. 포크레인과 불도저 공사가 한창인데, 동네 어르신들 5~6명이 오셨습니다. 이곳에 대체 무엇을 지으려고 하는지 고압적으로 묻더군요. 그래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원을 만들려고 합니다’고 답하니까 ‘우리는 동네 한가운데에 무슨 공장을 짓기라도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참 잘하셨네요. 사실 저희가 어렸을 때 동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기를 이 뒷산 자락에서 장차 큰 인물이나 장군이 날 명당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곳이 바로 그 땅입니다. 좋은 땅을 얻은 걸 축하합니다'라고 하시더군요(웃음).”
그는 당시 전혀 뜻밖의 덕담을 해주신 어르신들을 배웅하면서, 크리스천으로서 비록 미신같은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만 명당이 있는 게 아니라 어진 사람이 사는 곳이 바로 명당아닌가. “공사 기간 중 지역 주민들의 협조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곳 주민의 90% 이상이 크리스천이고, 저도 같은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듬뿍 받은 거 아닐까요(웃음).”
마산리 『59 갤러리 텃밭 작목반』과의 아름다운 동행 점차 두 분들과의 얘기가 깊어지고, 갤러리 주위 땅들도 둘러보며 점입가경(漸入佳境)하고 있는데, 텃밭 농사 파종을 도우러 두 사람이 찾아 왔다. “같은 교회 친구들인데, 지난 여름 폭염 속에서 아내가 정원 외에 텃밭 일까지 하느라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최병일 총무가 급히 찬물을 한 그릇 가득 떠다 주니까 벌컥벌컥 다마시더래요. 이러다가 자칫 김계숙 관장이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그래서 금년부터 텃밭은 자기들에게 맡기라며 일명 마산리 『5인 텃밭 작목반』이라는 팀을 구성했어요(웃음). 오늘이 마침 작업하는 날입니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워서 한마디 토를 달지도 않고 100프로 받아들였습니다(웃음).” 임대계약서가 놓여 있길래 흘낏 보니 일목요연(一目瞭然)하기 짝이 없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어느날 계약서를 출력해 서명하라고 해서 즉각 했어요. 맞습니다. 지금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지요. 저런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이 땅에 작은 교회를 지어 지역 사회에 봉헌(封獻) : 우리의 소망이자 버킷 리스트(Bucket List) 1순위 그에게 59 갤러리를 앞으로 활용할 복안은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이 갤러리를 훗날 자식들에게 대물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잘 관리할 수 있는 공적 기관에 기부하고 싶습니다. 오다가 보셨겠지만, 화성시는 공장과 창고가 무질서하게 난개발된 곳이 많은 편입니다. 이곳은 멀리 공장은 보이지만, 시골 정취가 가득한 곳입니다. 며칠 전 교수님이 여기 오셔서 작은 갤러리와 정원을 중심으로 화가와 조각가 등 『예술인 집성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시더군요. 일리 있는 말씀이라고 공감이 갔습니다.”
이대식 회장과 김계숙 관장은 5~6명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교회를 뒤쪽 터에 짓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이른바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다. 그 교회의 조감도(鳥瞰圖)라고 할 수 있는 그림도 김계숙 작가가 이미 그려 놓았다며 창고에서 찾아서 보여준다. 한 눈에 봐도 무척 아담하고 평화로운 교회다. “제가 자주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도 유달리 이 터쪽은 외풍이 거의 없고, 따뜻한 온기(溫氣)마저 느껴졌어요. 그래서 밤나무를 캐다가 심었는데, 잎이 푸르고 밤 열매도 무척 좋더라고요. 어느 겨울날 산에서 일하고 내려오면서 불현듯 ‘여기에 기도할 수 있는 작은 교회를 지으면 어떨까’라는 아내의 말에 ‘그래, 여기가 좋겠네~’ 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답했어요. 그때부터 이곳을 우리의 기도처이자 작은 교회를 지을 곳으로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곧 우리 손으로 지을 작은 교회를 상상해 봅니다.” 그 순간 퍼뜩 나태주 시인이 올해 펴낸 시집 ‘버킷 리스트’ 356페이지에 나오는 『1인 교회』라는 시가 떠오른 다. ‘목사 한 사람에 신도 한 사람. 목사 자신이 신도이기도 한 방 한칸짜리 오두막집 교회. 사막의 모래밭에 솟아난 붉은 튜립꽃.’
『59 갤러리 일터사역 방문기도회』를 통해 장도(壯途)를 축하하다 지난 11월 20일 오전 11시 30분부터 거행된 한국기독실업인회 (CBMC) 여의도지회 이정익 목사와 회원들의 『59 갤러리』 일터 사역 방문기도회는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함 속에 이뤄졌다. 먼저 준비 찬송인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다 같이 부르자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이어 손윤기 회장의 대표기도와 이 목사의 『위인 고넬료』에 대한 말씀으로 이날의 방문기도회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대식 회장은 일터 소개 및 합심기도를 통해 “59 갤러리와 정원을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잘 담당하게 하소서....”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이날 이 목사는 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은 설교 말씀을 하였다. “만추(晩秋)의 계절 11월입니다. 이대식 회장은 로마 군대의 지휘관이었던 『의인 고넬료(Cornelius)』 같은 분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회심(回心)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회장은 자기관리와 직장관리, 가정관리가 철두철미하여 여러 사람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대식 회장과 김계숙 관장 두 분은 나눔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 학교를 지어 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서 또한 뛰어나십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무지로 떨어집니다. 시와 미술작품, 자연 안에서 안식과 세척(洗滌)을 하며 쉼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에필로그 : 하나님의 뜻에 맞게 내 삶을 경영하여 이 회장에게 CBMC가 그들 부부의 인생에 미친 영향이나 소회를 물어보았다. “CBMC는 우리 인생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단언할수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할 때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업을 경영하자’고 되뇌이지만, 이게 그리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력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이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내 삶을 경영하여’라는 슬로건으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이정익 목사님이 『백부장 고넬료』를 비유하면서, 저를 의인(義人) 고넬료처럼 질서있는 사람, 구제 많이 하는 사람,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으로 소개하셨는데, 과찬(過讚)의 말씀입니다. 저는 더 분발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인생 좌우명이랄까 마음에 새기는 삶의 원칙은 무엇인지 물었다. “최근 저는 사소한 일상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상이 우리 인생의 전부니까요.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한편, 궁금했던 나텐제행복중등학교 관련 최근 동향이나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냐고 물었더니 낭보(朗報)를 전해주었다. 2024년 8월 말라위 국가에서 실시하는 학력고사에서 나텐제 학생의 89%가 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10월부터는 학생 수가 늘어나 380명(전년 240명)이 공부하고 있으며, 기숙사 건물이 완공되어 40명의 여학생이 우선적으로 입주하게 되었고, 6개월 후에는 한 동이 더 완공되어 남학생 40명이 추가로 기숙하게 된다고 얘기한다. 무척 보람을 느끼는 분위기다. 마지막으로 탑골프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나 2025 년도에 구상하고 계시는 플랜이 있는지 물었다.
“독서하는 독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025년부터는 ‘타인의 가치를 더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타인의 가치를 높이면, 자기 일의 가치도 높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와 남이 동시에 행복한 일을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리더십 이론에서 말하는 『널뛰기 이론』 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내가 최선을 다해 널을 높이 뛰어야 그 힘으로 상대방이 더 높이 오를 수 있고, 그 덕분에 이번에는 내가 훨씬 더 올라간다는 이치다. 이대식 회장의 타인의 가치를 더하는 삶이 바로 널뛰기 이론과 같다. 이대식 회장은 『의인 고엘료』요, 김계숙 관장은 그의 아내가 아니던가. <저작권자 ⓒ 탑골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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