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사랑이 남달랐던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를 일기로 소천하였다. 그는 세계 경제의 거목이자 스포츠계의 큰 별이었다. 젊은 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이 회장은 골프를 비롯해 레슬링, 탁구, 테니스는 물론 승마에서도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기간 중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는데 한국의 이름을 스포츠계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으로 취임 후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 그가 이룩한 경영성과는 취임 당시 10조 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 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천억 원에서 72조 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396조 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하며 삼성이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도록 했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나부터 변하자’는 ‘신경영’ 선언 1993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했다.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인간미와 도덕성,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삼성의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선회하였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삼성은 1997년 한국경제가 맞은 사상 초유의 IMF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 신화를 이뤄냈다. 2020년 브랜드 가치는 623억 불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을 표방했다. 신경영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적인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이는 삼성의 경영이념인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에 잘 나타나 있다. 이건희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다.
故 이건희 회장 체제에서 삼성은 골프 발전에 첨병 역할을 했다 (사)한국프로골프협회(이하 KPGA) 구자철 회장은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지난 10월 27일 KPGA 구자철 회장은 한종윤 상근부회장과 강욱순 골프아카데미의 강욱순 대표이사(54), KPGA 코리안투어 선수회 대표 홍순상(39·다누), 이성호(33)와 함께 빈소인 서울 강남구 일원동 소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고인을 애도하고 유족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전했다.
KPGA 구자철 회장은 조문 후 “고인께서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있어 주춧돌을 놓은 주역이셨다. 재계의 상징적인 큰 별이 진 것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라며 “또한 골프에 대한 애정으로 국내 프로골프 발전에도 힘써 주셨다. 고인 덕분에 우리나라 골프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큰 힘이 되어 주신 고인께 프로스포츠 관계자로서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삼가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골프채를 잡고 180야드를 치기는 쉽다. 조금만 코치를 받으면 200야드도 가능하다. 좀 더 열심히 하면 230야드까지 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250야드 이상을 치려면 다 바꿔야 한다. 스탠스, 그립 등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바꿔야만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기업이나 개인이 한계치를 뛰어넘으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 유학 시절 선수 생활을 했을 만큼 상당한 실력을 자랑했다. 그의 스승은 일본 프로골퍼의 원조 고바리씨였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의 전설인 故 연덕춘(향년 88세)과 한장상(80)에게 레슨을 받을 만큼 정성이었다. 고인의 첫 싱글은 1960년 후반이다. 아마추어로서는 보기 드문 장타자로 프로골퍼 못지않았다고 전해진다.
고인은 두 달에 한 번 골프를 즐겼다. 캐디 시절 직접 고인의 백을 멨던 김영미 전 중국 심양 용산국제골프클럽 대표이사는 아주경제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회장님은 소탈하시고 정겹고 권위적이지 않으셨다“라며 “한 번은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다. 당시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회장님께서는 ‘꿈을 크게 가지고 노력하면 꼭 이루어진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응원해주셨다. 그 덕분에 캐디에서 골프장 대표까지 오게 됐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의 나이 58세 때 일본 출장에서 발목을 다친 뒤로는 골프를 거의 치지 않았다. 그러나 골프에 대한 사랑과 이념은 발목 부상 전·후가 한결같았다. 대한민국 골프계의 든든한 거목이었다. 1998년 IMF 당시 박세리 감독(43)의 US오픈 '맨발의 투혼' 우승 뒤에는 삼성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삼성그룹은 1992년부터 골프 유망주 사업을 펼쳤다. 당시 고인은 “골프 산업은 세계적으로 한국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이라며 “골프 꿈나무와 전문 브랜드 육성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1996년에는 유명 골프 교습가인 데이비드 레드베터(미국)를 국내에 초청해 강습을 실시했고 그 이듬해 박세리가 레드베터의 제자가 된 것도 고인의 후원 때문이었다. 이후 삼성그룹은 박세리 전담팀을 꾸려 적극 지원했다.
3대에 걸친 삼성가(家)의 골프 사랑과 스포츠 지원, 세계로 도약하다 고인은 아버지에게 받은 골프 사랑을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52)에게도 심어줬다. 당시 그는 아들에게 “골프는 집중력과 평상심을 키워준다”라며 “주말에는 그룹 임원들과 스킨십을 위해 라운드를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러한 아버지의 가르침에 이재용 부회장도 골프 사랑이 남달랐다. 이재용 부회장은 고인을 닮아 골프 매너와 에티켓, 그리고 실력도 수준급이다. 3대에 걸친 삼성가(家)의 골프 사랑은 지난 2011년 1월 이재용 부회장의 영국왕립골프협회(R&A) 정회원 승인으로 이어졌다.
한편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추모하는 의미로 스위스 로잔에 있는 본부인 ‘올림픽하우스’의 오륜기를 조기로 게양한다고 밝혔다. IOC는 이와 함께 이 회장을 애도하는 성명도 발표했다. 고인은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후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하며 투병 중이던 2017년 IOC 위원직에서 물러났고, 그해 명예 위원으로 위촉됐다. 삼성은 1988 서울올림픽 후원을 시작으로 올림픽과 인연을 맺었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무선통신 분야 공식 파트너로 참여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26일(한국 시간) 성명을 통해 “이건희 IOC 명예회장의 사망 소식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어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IOC의 톱 파트너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을 전 세계에 홍보하고 스포츠와 문화의 유대를 증진함으로써 올림픽 성공을 이끌었다”며 “고인의 올림픽 유산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1년 7월 6일,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국제 컨벤션 센터에 집중됐다.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 밤 12시, IOC 총회장에 올림픽 찬가가 울리고 자크 로케 IOC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도전한 모든 나라를 환영한다”고 입을 연 그는 하얀 봉투 속의 카드를 공개했고, 이내 “평창”을 외쳤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리던 그 순간, 이건희 회장은 눈시울이 젖은 채 묵묵히 서 있었다. 2009년의 시작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섰던 이건희 회장은 1년 반 동안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났다. 이 기간 이건희 회장이 평창 유치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빈 거리는 지구를 5바퀴 돌고도 남았다.
그가 특별히 아꼈던 종목은 골프·야구·럭비로 삼성의 3대 스포츠다. 이 회장은 생전에 “심판이 없는 골프에서는 룰과 에티켓과 자율을, 기업경영과 비슷한 야구에서는 스타플레이어와 캐처정신을, 럭비에서는 투지와 추진력, 단결력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정정당당하며, 규칙과 에티켓을 존중하는 스포츠 정신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자 가치”라며 생전에 강조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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