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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본다” 부드러운 감성의 동양화가 윤순원

이금희 기자(toyzone@naver.com) | 기사입력 2021/12/06 [09:30]

“마음이 본다” 부드러운 감성의 동양화가 윤순원

이금희 기자 | 입력 : 2021/12/06 [09:30]

누구나 살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현실이 아니길 바라고 부정했던 여러 날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겨내고, 겪으며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낸다. 동양화가 윤순원의 작품에는 종교의 힘으로 환란의 시간을 수행한 그의 마음그릇이 담겨있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그의 철학이 주는 메시지를 함께 읽어보자.

  

 

  

작가님 작품을 보면 평면에서도 입체감이 느껴집니다

저의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입체성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입체성이란 상반되는 것들이 대립하면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부조 형태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비움의 작업과정이 필요합니다. 만들어진 선은 ‘긋는다’는 행위보다 ‘새긴다’는 개념으로 반복해서 비워낸 선의 흔적 위에 닥죽을 채우고, 다시 건조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데, 본래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음과 양의 동시성과 일체성을 비움을 통해 드러내어 발현시키는 것이죠.

 

작가님께서 특별히 애정을 갖는 작품이 있을까요?

누군가는 대표작을 꼽을 수도 있고, 애착을 갖는 작품이 있다고도 하지만 저는 모든 작품이 각각 작업했던 시간의 기억이 담겨있기에 모두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이미 누군가의 공간에 가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작품들은 아쉬운 마음이 더해져서 또 소중하게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 80×140cm, mixed media on hanji Relief, 2021

  

작가님의 작품에서 한지와 항아리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네 한지라는 소재와 항아리의 이미지. 이렇게 일관적인 요소는 어쩌면 제가 걸어온 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때 서예와 문인화로 작품 세계를 하면서 한지의 매력에 매료되었지요. 2008년부터 닥을 사용한 부조 작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진 것인데요. 몇 번의 거름질을 통해 두터운 질감을 갖게 되는 닥을 사용해서 평면에 입체적인 무늬를 만들다 보면, 실낱같은 한지의 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건 아주 유심히 보아야 느낄 수 있는 매력이죠. 작품을 섬세하게 바라봐 주시는 분들은 이런 결을 공감하실 거예요. 한지 고유의 특성이 자연스럽게 배치된 채 은은함과 단아함을 추구하고, 단색의 주조 아래 빚어낸 구성미를 통해 여백의 확장을 느낌은 물론 사고의 유형을 넓히는 방향으로 심어주는 작품이 많은 편입니다.

 

▲ 118×90cm, mixed media on hanji Relief, 2018

▲ 118×90cm, mixed media on hanji Relief, 2021

 

현재 작품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요?

오래전부터 김환기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정창섭 작가의 작품을 보고 한지의 특성이 느껴지는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미지는 잠깐 도자기 공부를 하면서 달항아리를 만드는 과정을 거치며,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 것이고. 가야시대의 토기 줄무늬토기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항아리의 소재를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 105×90cm, mixed media on hanji Relief, 2017

▲ 90×70cm, mixed media on hanji Relief, 2018

 

작가님의 내면은 어떤 세계관을 지향하는지요?

저는 오랜 시간 ‘선’에 관심을 갖고 직접 수행을 하며 예술적 정신성을 향상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선적 체험은 저 스스로에게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할 뿐 아니라 나아가 창의적 사고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인 항아리는 선가(禪家)의 화두 중 하나인 ‘불이’ 와 연관이 있는데요. 불이(不二)는 선가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둘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도 아니라는 의미와 동시에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도예를 배우면서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하나로 합치는 항아리 제작 과정에서 인간의 눈으로 보는 외부 세계와 마음속 세계는 하나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둘일 뿐이고, 마음속 외부 세계의 이미지는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즉 채우는 것이 아닌, 비워내는 것이 저의 세계관입니다.

 

최근 작품의 방향성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요?

새로운 작품을 준비할 때면 늘 큰 계획은 세우지만 막상 작업에 몰입하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생각과 느낌들이 새롭게 다가와 이내 변경되곤 합니다. 앞으로 제 작업은 가급적 절제된 형태와 심플함을 담는 방향으로 가고 싶은데요. 하지만 여전히 저는 새로운 것을 접하면 무언가에 감동하기도 하고, 특유의 호기심으로 뭐든 배우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라 스스로도 저의 아트는 예측불가 영역이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작품의 영감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낮선 곳으로의 여행이나 새로운 풍경, 시간 속에서 받는 느낌들이 저만의 색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티스트의 다양한 경험 들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가치가 내면의 성찰과 더해져서 새로운 창작이 완성되는 편입니다.

 

앞으로 아티스트로서 또 개인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점점 세상도 사람도 시간까지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제게 앞으로의 날 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잘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요즘입니다. 개인적으로 종교의 힘으로 마음공부를 하며 작품을 하는 시간이 수행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는데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잠자는 시간과 깨어 있는 시간이 반반이지만 내가 걸을 때 걷는 줄도 모르고, 먹을 때 먹는 줄도 모를 때가 있더군요, 매순간 깨어 있으라고 하지만 어느 것이 내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내면에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이나 말씀에서 철학가의 사색이 느껴집니다. 스스로를 어떤 작가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내 느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작가.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분별없이 자유로운 느낌을 느끼도록 배려하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친구처럼 함께할 수 있는 작품 만들기 위해 배움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익힘에 노력해야겠다’는 제 삶의 철학 때문이기도 하죠. 집착이나 군더더기 없는 작가님의 성격이 작품에도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덜어낼 때 비로소 삶에 대한 깊이를 통찰하는 울림, 비움으로서의 채움은 더욱 커지기 때문에 가급적 군더더기 없는 예술가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품 안에 작가의 생각을 채워 강요하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욕심과 의도를 더욱 비워내고, 관객과 작품이 더욱 순수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작가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은 멀리하고 한지가 주는 특유의 포근함을 통해 잊고 살기 쉬운 삶의 따뜻한 정서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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